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시프 브로즈 티토 (문단 편집) === 말년과 사망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USSR_stamp_I.B.Tito_1982_6k.jpg|width=100%]]}}}|| || 1982년, 티토 사망 2주기를 맞아 소련 체신청에서 발매한 우표.[* 사실 스탈린 시절에 앙숙이었다고 해도 1955년에 [[니키타 흐루쇼프]]와 만나면서 화해했으니 기념우표를 발매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 1974년 헌법 개정으로 종신 대통령이 되었기에 티토는 왕이나 다름없는 지위가 되었다. 그러나 말년에 가면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1980년 다리의 혈행장애로 입원해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동년 5월 4일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시 몸무게가 40kg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https://timesofindia.indiatimes.com/world/europe/forty-years-ago-yugoslavias-leader-josip-broz-tito-died/articleshow/75526278.cms|#]] 88세 생일이 고작 사흘 앞이었다. 제3세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생전의 명성답게 동년 5월 8일에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4명의 국왕들과 22명의 총리들은 물론, 31명의 대통령들, 심지어 47명의 외무장관들이 참석하여 당시 기준으로 가장 많은 나라의 국가지도자들이 참석한 장례식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https://www.reddit.com/r/HistoryPorn/comments/ul757e/the_funeral_of_josip_broz_tito_president_of/|티토의 장례식 모습(reddit)]]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이집트]], [[서독]]/[[동독]] 등 여러 나라들의 국가원수들을 비롯해 주요 정치 인사들은 다 참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티토의 장례식에 조문 사절을 보내지 않았지만 언론에서는 티토의 사망 및 장례식 소식을 올리며 제법 중요하게 다루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냉전의 최전방에 있었기에 공산권 국가의 수반이 사망해도 정부에서 함구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티토가 죽은 시기의 대한민국은 혼란기였다. [[서울의 봄]]으로 [[신군부]]와 국민들이 대치했고 곧이어 [[5.17 내란]]과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설령 외교 관계 개선차 가고 싶어도 최규하 대통령이든 전두환이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당시 각국의 정치인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 [[소련]]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 * [[서독]] - [[헬무트 슈미트]] 총리, [[빌리 브란트]](전 총리,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총재) * [[동독]] -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 * [[영국]] - [[마거릿 대처]] 수상, [[제임스 캘러헌]](전 총리, [[영국 노동당]] 당수) * [[프랑스]] - [[레몽 바르]] 총리, [[프랑수아 미테랑]]([[사회당(프랑스)|사회당]] 당수) * [[미국]] - [[월터 먼데일]] [[부통령]] * [[중국]] - [[화궈펑]] 총리 * [[일본]] -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 * [[인도]] - [[인디라 간디]] 총리 * [[노르웨이]] - [[올라프 5세]] 국왕 * [[벨기에]] - [[보두앵(벨기에)|보두엥]] 국왕 * [[요르단]] - [[후세인 1세]] 국왕 * [[이라크]] - [[사담 후세인]] 대통령 * [[이집트]] -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 [[팔레스타인]] [[PLO|해방기구(PLO)]] -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 * [[북한]] - [[김일성]] 주석, [[허담]] 외무 부장, [[오진우]] [[인민무력부]] 부장.[* 1950년대만 해도 김일성이 티토를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관계가 냉랭했지만, 1970년대에 북한 역시 [[주체사상]]을 통해 소련과는 다른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유고슬라비아와 북한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진 상태였다. 1977년에는 티토가 직접 북한을 방문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 [[쿠바]] -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 [[루마니아]]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 * [[이탈리아]] - [[프란체스코 코시가]] 총리 * [[스웨덴]] - [[칼 16세 구스타프|칼 구스타프 16세]] 국왕 * [[시리아]] -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 시리아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이다.] * [[스페인]] - [[아돌포 수아레스]] 총리 티토의 묘지는 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는 티토 기념관 내에 있다. 1980년대 후반에 민족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일며 티토가 격하되고 그의 묘지에 드나드는 인원이 크게 줄기도 했지만 티토 사후에 발생한 각 공화국 간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티토 시절에 향수가 일게 되었고, 종전 이후 과거 유고 연방에 속해 있던 어느 국가에서든 존경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참배객들이 자주 드나들고는 한다.[* 옛 구 유고 연방 출신 국가 사람들이 아닌 다른 나라의 외국 관광객들도 찾기도 한다.] 이와는 별개로 유고 연방 해체 이후 유고 연방에 속해있었던 각 나라들에서 유고슬라비아 시절의 잔재들을 청산하며 각자 새롭게 자민족 정체성들을 내세우며 국가적 이미지를 바꾸고 있고, 티토의 묘지가 있는 세르비아 국내에서도 티토가 세르비아계가 아닌 크로아티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매장된 티토 기념관의 티토 무덤을 철거, 파묘하고 그의 유해를 본래 출생지인 크로아티아로 이장시키자는 주장도 소수나마 제기되고 있지만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승계국을 표방하고 있는 세르비아 정부에서는 세르비아인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티토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건국의 아버지라는 역사적 근거를 내세우며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티토 묘역을 철거하고, 그의 유해를 크로아티아로 이장시키자는 일부 주장에 반대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